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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추앙과 환대, 실존주의, 불행포르노)

by myinfo37212 2026. 2. 13.

철학적 관점에서 <나의 해방일지>를 바라보며 실존주의 드라마로써 재평가하려고 합니다. 박해영 작가 특유의 철학적 깊이와 함께 '추앙'과 '환대'라는 낯선 단어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답답하고 우울한 연출로 인해 '불행포르노'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뭘까요?

나의 해방일지

추앙과 환대, 결단으로서의 기투

개인적으로 드라마 속 명장면을 꼽으라면 4화에서 구씨가 염씨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도랑을 온 힘을 다해 뛰어넘는 장면입니다. 철없던 시절 학교를 몰래 빠져나와 떡볶이를 먹으러 가거나 수업을 째고 짧은 여행길에 올랐던 게 떠올랐죠. 끝없이 반복될 것 같았던 삶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향해 도약한 이 장면은 기투(企投, Entwurf, Projection)라는 개념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기투란 이 세상에 던져진 현존재를 틀 짓는 구조로, 우리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기투할 뿐 아니라 삶의 수단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기투합니다. 페터 쿤츠만은 기투를 '자신을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내던지며,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행위'로 설명합니다. 구씨가 바람에 날아간 미정의 모자를 가져다주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해 뛰어넘기를 선보인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자기 자신을 내던지며 자신을 확인한 행위의 전형입니다. 드라마가 남긴 최고의 단어는 '추앙'입니다. 미정이 구씨에게 "날 추앙해요. 나는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처음에는 뜬금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주는 오묘함과 충격은 드라마에 대한 팬덤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미 오염되었고, 더 이상 진정한 사랑을 담지 못합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장 흔한 단어로 책임회피를 합니다. 작가는 사랑의 복권을 지향하며 추앙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사랑이라기보다 인정받고 싶은 절박함에 가깝습니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시선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결말에 제시된 '환대'라는 개념 역시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철학적 단어입니다. "형, 환대할게, 환대할 거니까 살아서보자"라는 대사에서 환대는 레비나스가 제안한 무조건적 수용을 지칭합니다. 주체의 조건과 상황과 가능성의 영역에서 타자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낯선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종잡을 수 없고, 이름도 직업도 알지 못하는 철저한 타자를 상대로 추앙을 제안하며 소통하는 미정의 태도는 본인이 사회 어디서도 받지 못했던 환대를 실천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실존주의 드라마로서의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는 실존주의 철학을 드라마 언어로 번역한 작품입니다. 실존이란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채 이 세계에 유기되어 있는 인간'을 가리키며, 동시에 '자기의 존재의미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창조해 내도록 운명 지어져 있는 인간'을 지칭합니다. 굉장히 익숙하지 않나요? 매일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현대인들, 가끔씩 이렇게 살다죽는걸까?라는 질문은 해봤다면 공감할 겁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 역시 각자 다른 이유로 실존적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큰딸 염기정은 여론조사 회사에서 일하지만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하고 허송세월한 삶이 안타까워 아무나 한 번만 뜨겁게 사랑하고 싶어 합니다. 둘째 염찬희는 편의점 본사 말단 직원으로 또래들의 욕망에 끌려 자동차와 여자를 갈구하다 목표를 잃었습니다. 주인공 염미정은 카드회사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모든 관계가 노동처럼 느껴지고, 아무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공허함 속에 살아갑니다. 드라마는 실존적 반복을 탁월하게 영상화했습니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아닌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주죠.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생각해 영상을 꺼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반복 장면은 극적 사건의 발생을 기대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지루한 삶을 효과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답답함 자체가 의도된 메시지라는 해석을 해보면 어떨까요? 인물들이 계속 무너지고, 대화는 늘 건조하며,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의미 없는 노동처럼 느껴지는 현대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장치라면 일상을 마주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무기력함을 느끼면서도 "그냥 요즘 좀 힘들어" 정도로 넘기는 것처럼, 드라마 속 인물들도 병명을 붙이지 않은 채 지쳐 있는 상태라는 거죠.

불행포르노인가, 현실의 정직한 재현인가

〈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불행포르노'라는 지적입니다. 인물들이 계속 무너지고, 대화는 늘 건조하며,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장면이 길게 이어지다 보니 보는 사람까지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염미정의 표정이나 집과 회사 사이를 오가는 루틴은 현실적이라기보다 일부러 고통을 늘려 보여주는 연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드라마는 1화 2.9%로 시작해서 9화까지 3%대의 낮은 시청률을 보였습니다. [자료: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다소 어두운 이야기와 느린 전개에 답답함을 호소한 시청자들이 많았습니다. 대중성을 포기하고서라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제작자의 강렬한 열망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시청자에게는 지나친 불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 불편함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이 특별해질 거라고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반복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미화하지도, 해결해주지도 않고 그대로 보여줍니다. 보통 드라마라면 갈등이 생기면 빠르게 해결되거나 감정이 크게 터지는데, 여기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갑니다. 가족들이 말없이 밥 먹는 장면, 퇴근길에 걷는 장면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인물들의 내면이 더 크게 보입니다. 카뮈는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총을 쏘기 직전의 지루하고 나른함을 묘사했는데, 〈나의 해방일지〉는 이방인을 연상케 하는 실존적 무력감을 담아냅니다. 인물들은 특별하다기보다 너무 평범합니다. 우울증 같은 증상을 보이지만 아무도 스스로를 우울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미정은 "모든 시간이 노동 같다"고 말하고, 찬희는 무기력하게 술만 마시며, 기정은 관계 속에서 계속 공허함을 느끼는데도 누구 하나 병명을 붙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입니다. 분명히 지쳐 있고 무너져 있는데 "그냥 요즘 좀 힘들어" 정도로 넘기는 현대인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나의 해방일지〉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작품이 아니라,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보면서 여러 번 지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위로받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우리 삶의 지루함과 무력감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의 관계들은 로맨스라기보다 서로의 공허를 잠깐 붙잡아주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나의 해방일지〉와 동시에 방송을 시작한 〈우리들의 블루스〉는 장애인 연기자를 등장시키며 타자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2022년 상반기에 동시에 방송된 주말드라마가 함께 '환대'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안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루카치를 인용하면, 드라마는 근대의 소설의 권좌를 넘겨받아 현대의 지배적 장르가 되었고, 우리는 운 좋게 그 시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해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정말 해방이라는 게 가능한지. 불행포르노라는 비판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존주의적 시선에서 보면 그 불편함 자체가 메시지였습니다. 답은 없지만, 그 질문을 오래 붙잡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의 해방일지〉는 오래 기억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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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eidegger, M. (1927/2010). Being and time (J. Stambaugh, Trans.).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Levinas, E. (1961/1969).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A. Lingis, Trans.). Duquesne University Press.
Camus, A. (1942/1989). The stranger (M. Ward, Trans.). Vintage International.
PD Journal. (2022). ‘나의 해방일지’, 실존주의 드라마의 탄생. PD저널.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3795
Kim, S. (2022). 서사에 앞서 인간이 있다, <나의 해방일지>의 박해영 작가. 한겨레21.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511.html
씨네21. (2022). 박해영 작가 인터뷰.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2198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2198)
Nielsen Korea. (2022). TV ratings data for My Liberation Notes. https://www.nielsen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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