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로서 필드에서 활동하며 '프리랜서 플래너'라는 직함은 제 존재를 정의하는 유일한 닻이었습니다. 하지만 기획 단계의 계약들이 돌연 무산되는 직업적 위기 상황을 겪으며, 저는 '설명 가능한 나'라는 정체성의 유효기간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잃은 건 일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나"였다는 것을요. JTBC 드라마 '김 부장'이 던진 질문도 똑같습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부장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지면, 그 사람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요. 2025년 PMI(피엠아이)가 전국 만 20~59세 남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실 직장인 리포트'의 심층 데이터에 따르면, 이 현상은 개인의 고민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리로 분석됩니다.

직장인 만족도의 속내, "보통입니다"라는 검열된 감정
조사에서 직장인들의 현재 마음을 한 줄로 요약하면 '보통이다'(40.6%)가 가장 많았습니다. 만족한다는 42.0%, 불만족한다는 17.4%였습니다. 그런데 이 '보통'이라는 답변이 묘하게 섬뜩합니다. 직장에서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대개 두 가지뿐입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적당한 긴장감과, 질서를 유지하는 무던한 순응. 불안, 허무, 분노 같은 감정은 '관리해야 할 문제'로 취급되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을 "피곤하다"로, 공허를 "그냥 보통"으로 둥글게 눌러 말합니다.
만족 이유 1위는 안정적 수입(52.4%)이었습니다. 이 수치는 우리 사회가 자아를 설계할 때 의미보다 현금흐름을 먼저 중심축으로 삼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자아의 중심을 급여에 고착시키면, 무게중심은 필연적으로 조직의 인사권에 종속됩니다. 이때부터 삶의 질문은 달라집니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닌, **'나는 언제까지 유효한가'**라는 생존의 물음으로 치환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일이 잘 돌아갈 때는 제 정체성이 선명했습니다. 오전 미팅, 오후 제안서 수정, 저녁 협력사 통화. 스케줄이 곧 정체성이었으니까요. 불만족 요인은 낮거나 불안정한 보수(38.6%), 일의 의미 부족(16.3%), 관계 스트레스(12.3%) 순이었습니다. 가장 허무했던 순간 1위는 '나보다 덜 일하는 사람이 더 인정받을 때'(19.6%)였습니다. 인정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자아의 연료가 됩니다. 특히 성취나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조건부 자존감이 강한 환경에서는, 인정이 줄어드는 순간 자존감이 조정이 아니라 붕괴로 반응합니다.
자기 복잡성(Self-Complexity) 이론으로 본 중년의 정체성 붕괴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복잡성(Self-Complexity)은 자아가 여러 독립적 영역으로 다양하게 구성될수록 스트레스 상황에서 정서적 완충 효과가 발생한다는 개념입니다. 반대로 자아가 단일한 정체성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그 영역이 무너질 때 자존감 전체가 동시에 타격을 받습니다. 김부장이 무너진 건 가난해져서가 아니라, 가난해지는 순간 함께 삭제되는 '자아의 파일 구조' 때문입니다. '서울 자가/대기업/부장'이라는 수식어들은 사회적 성취의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그의 자아를 지탱하는 외골격입니다. 외골격이 단단할수록 내부는 덜 발달합니다. 회사 밖에서 작동하는 역할—친구로서의 나,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나, 어떤 취향을 가진 나—가 충분히 자라지 못한 상태에서 직함이 흔들리면, 한 영역의 실패가 아니라 존재 전체의 시스템 장애가 됩니다.
| 구분 | 단일 정체성 (김부장) | 자기 복잡성 (지향점) |
|---|---|---|
| 구조 | 직장/직급에 몰빵된 외골격 | 취미, 학습, 관계 등 분산된 내골격 |
| 위기 시 반응 | 존재 전체의 시스템 장애 (붕괴) | 다른 영역을 통한 정서적 완충 |
| 사회적 호칭 | 부장, 아저씨, 꼰대 | 기획자, 러너, 작가, 시민 |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일정이 비어버린 순간 저는 갑자기 설명이 어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친구이기도 했고,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했고, 운동을 좋아했지만, 그 정체성들은 늘 부차적인 것처럼 취급됐습니다. 메인 화면은 늘 '일'이었으니까요. 일이 잘 돌아갈 때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한 칸이 흔들리자, 다른 칸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취미를 즐기면서도 죄책감을 느꼈고, 책을 읽으면서도 불안했습니다.
세대별 생존전략, 경유지 vs 종착지
조사에서 앞으로 얼마나 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45.9%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년까지"라고 답했습니다. 30·40대에서 이 응답이 두드러졌습니다. 반면 20대는 '2~3년 정도 더'(25.7%)가 가장 높아 직장을 경력의 종착지가 아닌 경유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세대 특성을 넘어 자기 복잡성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경유지라는 감각은 "나는 여기만이 아니다"라는 전제를 품고 있습니다. 반면 "정년까지"라는 감각은 안정 지향처럼 보이지만, 자기 복잡성을 낮추는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정년까지 버티려면 자아의 많은 부분을 조직에 맞춰 정렬해야 하고, 그 정렬은 시간이 길수록 더 단단하게 굳습니다.
김 부장은 바로 그 '정렬의 장기화'가 빚어낸 인물입니다. 25년간 근속하며 회사에 충성을 바친 그가 겪는 위기는 경제적 실패가 아니라 정체성 구조의 붕괴입니다. 직급, 연봉, 아파트 평수 같은 외적 지표가 자존감을 지탱하는 핵심 조건이었는데, 조건이 사라지자 자존감 역시 급격히 흔들렸습니다. 이때 나타나는 방어기제가 분노, 책임 회피, 과도한 비교 심리입니다. 성공한 직장인의 기준은 일·삶의 균형(25.7%)이 가장 높았고, 높은 소득(23.6%), 안정된 직장(14.6%)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원 가능성에 대해 직장인 10명 중 3명(28.2%)은 "나도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답하며 구조조정 공포가 일상화됐음을 보여줬습니다. 노동시장은 유연해졌는데, 인간은 유연해질 시간이 없습니다. 이 모순이 김 부장의 비극을 사회적 사건으로 만듭니다.
호칭이 만드는 단선적 자아, 꼰대부터 영포티까지
우리 사회가 중년을 바라보는 관점은 극단적으로 갈려 있습니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아재'라는 친숙한 느낌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꼰대'나 '개저씨'라는 부정적 단어로 소비되기도 합니다. 영포티는 본래 기성세대 가치관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으려 했던 40대를 지칭했지만, 최근엔 젊은 감성을 억지로 흉내 내는 중년을 조롱하는 표현으로도 쓰입니다. 호칭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사회가 중년에게 붙이는 라벨이자 감정의 방향표입니다. 그 라벨은 대체로 한 가지 기능만 남깁니다. 버티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 시대에 뒤처진 사람. 여기에는 "아직 배우는 사람"이나 "새롭게 실험하는 사람" 같은 라벨이 거의 없습니다. 라벨이 단선적일수록 자아도 단선적으로 자라기 쉽습니다.
김부장이 팀원들을 옥상으로 불러 모아 "혹시 여러분들이 나를 꼰대로 생각하는…"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소통하는 중년이 되고 싶다는 흔적이 묻어있지만, 젊은 팀원들에게는 영 와닿지 않습니다. 이는 개인의 소통 능력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중년에게 허락하는 정체성의 폭이 좁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김 부장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건 중년의 불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저장해 둔 방식의 취약함입니다. 그는 너무 성실했습니다. 게으르지 않았고, 무능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하나의 정체성을 완성해 냈습니다. 그래서 더 취약했습니다. 단단하게 쌓은 탑이었기에, 무너질 때 충격도 컸습니다. 자기 복잡성은 멋진 취미를 많이 가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존재를 하나의 수식어에 압축하지 않는 연습입니다.
직함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나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조금 더 잔인하게 변형되어야 합니다. 직함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사라지도록 설계된 나는, 왜 그렇게 설계되었을까요. 김부장의 이야기는 개인 서사가 아니라, 자아를 단일 파일로 저장하게 만드는 시대의 저장 방식에 대한 비평입니다. 회사는 사람을 단일한 기능으로 보길 원하고, 사회는 성공의 체크리스트로 사람을 평가하며, 문화는 호칭으로 사람을 고정합니다. 그 삼중 고정 속에서 자아는 다양해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해법은 흔한 자기 계발식 처방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회사 밖에서 의미를 생산하는 루트, 관계를 유지하는 루트, 몸과 시간을 다르게 쓰는 루트를 평소에 깔아 두는 것. 그리고 사회는 중년에게도 그런 루트를 허용하는 언어를 제공해야 합니다. 부장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언어 말입니다.
참고:
Linville, Patricia W. “Self-Complexity as a Cognitive Buffer against Stress-Related Illness and Depress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52, no. 4, 1987, pp. 663–676.
Festinger, Leon. “A Theory of Social Comparison Processes.” Human Relations, vol. 7, no. 2, 1954, pp. 117–140.
Frankl, Viktor E. Man’s Search for Meaning. Translated by Ilse Lasch, Beacon Press, 2006. (Original work published 1946.)
Deci, Edward L., and Richard M. Ryan. “The ‘What’ and ‘Why’ of Goal Pursuits: Human Needs and the Self-Determination of Behavior.” Psychological Inquiry, vol. 11, no. 4, 2000, pp. 227–268.
Crocker, Jennifer, and Lora E. Park. “The Costly Pursuit of Self-Esteem.” Psychological Bulletin, vol. 130, no. 3, 2004, pp. 392–414.
Kernis, Michael H. “Toward a Conceptualization of Optimal Self-Esteem.” Psychological Inquiry, vol. 14, no. 1, 2003, pp. 1–26.
우리 시대 ‘김 부장’들은 과연 행복한가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140
현실 직장인 리포트 2025 https://pmirnc.com/bbs/board.php?bo_table=blog&wr_id=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