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40대까지 이어지는 두 여성의 질긴 인연을 통해 인간관계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단순히 우정 이야기가 아닌, 동경과 혐오가 공존하는 양가감정, 비교에서 시작되는 열등감,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림자를 정면으로 다루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관계가 아닌 현실의 진흙투성이 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을까요?

좋아하면서도 미워하는 양가감정의 실체
드라마 속 은중이 상연에게 "나는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라고 속으로 생각한 뒤 "짜증나"라고 말하는 장면은 양가감정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양가감정이란 한 대상에게 서로 대립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혼재하는 심리 상태를 의미하며, 은중과 상연은 서로에게 동경과 혐오를 동시에 느낍니다. 이는 두 사람이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존재하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일하며 매일 목격하는 것은 사람 마음의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함입니다. 친구, 연인, 심지어 부부와 부모-자녀 사이에서도 시기와 질투심이 자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은중과 상연에게 이 괴리와 충돌이 유독 컸던 이유는 그들의 동경과 혐오를 불러일으킨 불씨가 인간의 핵심 감정인 열등감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관계가 이렇게까지 복잡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어릴 때는 친구면 그냥 친구고,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라고 단순하게 믿었지만, 성인이 되어 돌아보면 완전히 좋기만 했던 사람도, 완전히 싫기만 했던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마음은 완전히 상반되는 양가감정을 동시에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 심리의 본질입니다. 양가감정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 상태입니다. 글을 쓸 때도 흥미롭고 기대되는 마음과 동시에 버겁고 놓아버리고 싶은 감정이 공존하듯,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양가감정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열등감 콤플렉스가 만든 동경과 질투의 악순환
정신과 의사 아들러는 "인간이란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열등감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며, 이를 부정할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극복하려는 것이 곧 성장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열등감 그 자체와 '열등감 콤플렉스'는 다릅니다. 열등감에 지배되어 버린 병적인 상태가 바로 열등감 콤플렉스입니다. 은중은 전학 온 상연을 처음 본 순간부터 비교를 시작했습니다. 부자 집안에 공부도 제일 잘하고 인기가 많은 상연은 가난한 집안의 자신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없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다가온 선생님이 바로 상연의 엄마이기까지 했으니, 자신의 결핍을 모두 지니고 있는 존재가 바로 상연이었습니다. 은중에게 상연은 자신이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존재로 보였습니다. 반대로 상연은 은중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사람의 마음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것이 부끄러워 네가 집에 초대한 첫 친구라는 은중에게, 상연은 자신은 어머니로부터 미움받는다고 고백합니다.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고 느낄 때 만들어지는 결핍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상연의 콤플렉스였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은중은 상연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존재였습니다. 상연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모두가 은중이를 좋아했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좋아하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미웠다. 너처럼 사랑받지 못해서, 너처럼 사랑하지 못해서, 너처럼은 할 수가 없어서. 아낌없이 줄 수도, 받을 줄도 몰라서." 이들이 서로에게 강렬한 열등감을 느낀 이유는 서로가 자신의 가장 큰 결핍을 반영하는 거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은 관계가 완벽하게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보면서도 비교를 멈추는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진실입니다. 건강한 관계란 상처를 안 주는 관계가 아니라, 자기 그림자를 조금씩 인정하게 만드는 관계일 수 있습니다. 은중과 상연이 서로의 약점을 알고 있어서 더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마음속 그림자를 마주하고 성장하는 과정
정신과 의사 칼 융은 우리 자아가 수용하지 못해 의식 밖으로 밀려난 인격의 측면을 '그림자'라고 불렀습니다. 나 스스로 용인하기 쉽거나 남들에게 내보여도 될 것 같은 감정은 수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감정은 무의식 세계에 눌러 담게 됩니다. "상연이가 네 라이벌이었냐"는 질문에 은중은 라이벌 의식은 없이 부럽기만 했다고 느낍니다. 닿을 수 없이 우월한 상연에 대한 질투심, 그리고 친한 친구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혐오는 그림자에 남습니다. 상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랑받는 은중을 볼 때마다 자신의 결핍이 자극받습니다. 게다가 은중은 자신이 감추고 싶어 하는 어두운 기억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결핍과 자신 때문에 오빠를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을 외면하고 살고 싶지만, 은중과 마주할 때마다 그 그림자들이 다시 떠오르게 됩니다. 은중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견디지 못한 상연은 결국 관계를 파괴하려 합니다. 상연의 편지 속 고백은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너를 좋아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나는 힘이 들었다. 그래서 파괴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너를 파괴하고 싶어서. 나를 파괴하고 싶어서." 관계의 파괴는 실은 자신의 그림자를 파괴하려는 시도였던 것입니다. 이 드라마가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이유는 모두의 마음에 그림자가 있고 모든 관계에 양가감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친구, 연인, 심지어 부부, 부모-자녀 사이에서도 시기와 질투심이 자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더 성숙한 사람일수록 이런 그림자도 받아들이지만, 인정할 수 없어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원인도 모르는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쫓기며 자신을 돌아볼 시간 없이 살던 이들이 30, 40대가 되어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진정한 문제는 상대방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관계는 상대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요즘처럼 관계도 효율적으로 유지하려는 분위기에서, 이 드라마는 오히려 관계가 불편하고 어색하고 감정 낭비처럼 느껴질 때도 성장의 일부라고 말해줍니다. 점점 더 강한 도파민 분출을 요구하는 최근 트렌드에서 벗어난 이 잔잔한 드라마가 많은 사람의 마음에 닿는 이유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완벽한 관계가 아닌 현실 속 진흙투성이 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원래 사람은 다 별로라고, 그러니 과거와 지금의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라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은중과 상연'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관계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다독여줍니다. 대인관계란 기차여행처럼 함께하는 인연들이 자꾸 변하는 것이 당연하며, 흘러간 인연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다기보다 조금은 씁쓸하면서도 이상하게 위로받는 기분이 남는 것은, 이 드라마가 관계의 본질을 정직하게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더 성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며, 젊은 날의 대인관계에 진한 아쉬움이 남아있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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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경하고 미워한 '은중과 상연'... 모든 관계엔 '양가감정'이 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895502?sid=103